
1. 신라 말기의 사회 변동 진골 귀족들은 골품제에 집착하면서 족당을 형성하여 왕위쟁탈전을 시작하면서 왕권은 약화되고, 상대등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지배층의 녹읍 부활, 사원의 면세전 증가, 귀족들의 토지 사유화, 과도한 수취 제도로 토지를 읽고 노비가 되거나 초적이 되는 농민들이 발생하였다.조세의 독촉으로 몰락한 농민들이 반란 일으키게 되었고, 상주(사벌주)에서 발생한 원종과 애노의 난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농민항쟁이 확산되었다. 중앙(8세기 말)지방(9세기 초 · 중기)전국(9세기 말)◎ 진골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 시작◎ 혜공왕 - 대공·대렴의 난(768) - 96각간의 난(768) - 김지정의 난(780) ◎ 지방으로 왕위 다툼이 확산 됨◎ 헌덕왕 - 김헌창의 난(822) - 김범..

2. 발해(남 · 북국 시대)고구려 유민들이 요동을 거점으로 당에 지속적인 저항을 하자, 당은 보장왕을 요동 도독으로 임명하고 소고구려국(친당)을 세워 무마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였다. 696년 거란족 이진충이 당나라에 일으킨 반란을 틈타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 말갈 집단이 만주 동북 지방으로 이주하였다.대조영이 길림성 돈화현 동모산 기슭에 '진'을 건국(698)하였다.이로써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시대가 출현하였다. 1) 고왕 (대조영, 698~719)거란족 이진충의 난(696)을 틈타 만주 동북 지방으로 이주하였다.길림성 돈화현 동모산 기슭에 '진'을 건국(698)하였다.연호를 천통이라고 하고, 당나라 현종에게 발해군왕으로 책봉되면서 국호를 발해로 변..

1. 통일 신라 (남 · 북국 시대) 1) 신라 중대의 정치무열왕 ~ 혜공왕 (삼국사기 구분에 의함): 무열계 진골의 왕위 세습왕권의 강화국왕과 집사부(시중) 중심의 정치6두품(행정실무 담당, 국왕의 정치적 조언자)의 역할 증대화백회의(상대등)의 권한 약화13개 관부를 병렬적 독립기관으로 하였으며, 각 부의 장관은 여러 명이었다. (1) 무열왕 (김춘추, 654~661)김유신의 후원을 받은 김춘추는 상대등 비담의 반란을 진압하고 상대등 알천을 견제하여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다.무열 왕계 진골 직계 자손이 왕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백관들을 감찰하는 감찰 담당 기구인 사정부를 설치(659)하였다.백제를 정복하였다. (660)집사부 시중의 권한을 강화하여 상대등 세력을 억제하여 진골 귀..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동북쪽으로 세력 확대를 꾀하고, 한강유역을 독점한 신라 세력이 팽창하면서 고구려를 압박하자 고구려는 백제 · 돌궐 · 왜와 연합하여 신라를 압박했다. 그러자 신라는 중국의 수 · 당과 동맹을 맺어 대응하였다. (십(十) 자 외교)고구려의 대중국 전쟁 승리는 중국의 한반도 침략을 저지하여 백제와 신라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이다. 1. 고구려 VS 수나라위진 남·북조의 대립을 적절하게 이용하던 고구려는 수의 문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돌궐을 정복하자, 고구려의 영양왕이 말갈군 일만 명을 이끌고 요서지방을 선제공격하였다. 이에 수 문제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1차)하였다.수 문제의 30만 대군은 고구려의 반격과 질병, 태풍으로 인하여 실패하였다.수 양제의 100만 대군이 침입하여 평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