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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의 통치 체제

▷  삼국 초기의 통치 체제

  • 부족적인 성격으로 각 부의 귀족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을 지배하였으며, 각자 제사를 지낼 정도로 왕권이 미약하였다. (외교권은 왕이 직접 하였다.
  • 귀족 합의 기구가 존재하였다. 
  • 성 · 촌 단위로 지방 행정이 형성되었다.

▷  삼국 후기의 통치 체제

  • 행정적 성격이 강해지며, 왕권 강화를 위해 관등제를 정비하고 지방행정 조직과 군사 조직을 일원화하였다.
  • 부 · 방 · 주 단위로 지방 행정을 개편하였으며, 지방관은 군대의 지휘관이었다.

 

    1) 고구려       

"감옥이 없고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들이 모여서 논의하여 사형에 처하고 처자들은 몰수하여 노비로 삼는다."
  • 관등: 평양 천도 이후 관등제를 정비하였다. 10여 관등으로 태대, 대, 소사자 등이 있다.
  • 수상(국상): 대대로, 막리지(대막리지)가 있다.
  • 중앙 관제: 내평(내무, 국정 담당), 외평(외무 담당), 주부(재정 담당)
  • 지방 행정: 수도- 5부 / 지방- 5부(군사지휘관: 욕살) · 성(성주: 처려근지, 도사) / 특수지역- 3경(국내성, 평양성, 한성)
  • 각 지방의 지방관이 군대를 지휘하였다.
  • 유사시 대모달 · 말객 등의 중앙 무관직들이 군대를 지휘하였다.
  • 청소년 군사 단체인 선비가 있었다.
  • 귀족 합의제로 5 관등 조의두대형부터 참여 가능한 제가 회의가 있다.

 

   2) 백제      

"호암사에 정사암이란 바위가 있다. 국가에서 재상을 뽑을 때 후보자 세~네 명의 이름을 써서 상자에 넣어 바위 위에 두었다."     
  • 관등: 고이왕 때 16 관등제를 정비하였다. ~, ~ , 무명 계열이 있다.
  • 고이왕 때 관리의 복색을 정비하였는데 자색(1~6 관등, 은제관식), 비색(7~11 관등), 청색(12~16 관등)으로 구분되었다.
  • 수상(국상): 상좌평 또는 내신좌평은 3년마다 정사암 회의에서 선출하였다.
  • 중앙 관제: 고이왕 때 중국의 6전 조직을 모방하여 6 좌평을 정비하였다. 사비천도 이후에는 22부(외관 10부(중앙 정무), 내관 12부(왕실 사무))의 중앙 관제로 확충 및 정비하였다.
  • 지방 행정: 수도- 5부(장관: 달솔) / 지방- 5방(장관: 방령, 700~1200명의 군사를 거느린다.) · 군(군장) · 성(성주, 도사)/ 특수지역- 22 담로(무령왕, 지방 중심지에 왕자나 왕족, 지방 귀족을 파견해 직접 다스리면서 지방세력을 통제하였다.)
  • 청소년 군사 단체인 수사가 있었다.
  • 귀족 합의제로 정사암(천정대) 회의가 있다.

         ▷ 백제의 6 좌평

             내두좌평: 재정 사무

             내법좌평: 의례, 교육 담당

             위사좌평: 국왕 호위(숙위 군사)

             조정좌평: 법률, 형벌

             내신좌평: 왕명 출납, 문관 인사 담당

             병관좌평: 군사와 국방

 

   3) 신라      

"큰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중의를 따른다. 이를 화백회의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통과하지 못하였다."
  • 관등: 법흥왕 때 17 관등제를 정비하였다. ~찬, ~나마
  • 수상(국상): 상대등 (1 관등과 수상이 일치하지 않는다.)
  • 중앙 관제: 이원적인 구성으로 중앙은 경위제로 17관등으로 이루어졌으며, 지방은 외위제라 하였으며 11관등으로 되어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외위제는 경위제로 통합이 되었다.
  • 지방 행정: 수도- 6부 / 지방- 5주(장관: 군주) · 군(당주) · 성(도사)/ 특수지역- 2 소경(중원경(충주) · 동원경(강릉))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 각 지방의 지방관이 군대를 지휘하였다.
  • 중앙군: 모병에 의한 직업 군인으로 이루어진 서당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9 서당으로 개편되었다.
  • 지방군: 정(6정)이 있었으며 주 단위로 설치하였다. 진골 출신의 장군(군주)이 지휘를 하였으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10정으로 개편되었다.
  • 청소년 군사 단체로 화랑도가 있다.
  • 귀족 합의제로 화백 회의(만장일치제, 의장: 상대등)가 있다.

 

     4) 통일신라의 통치 체제

  • 진덕여왕 때 설치된 집사부의 기능을 강화하고, 14개 관청을 정비하였다.
  • 집사부 시중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화백회의와 상대등 세력이 약화되었다.
  • 신문왕 때 국립대학인 국학이 설립되었고, 졸업생들을 관리로 선발하기도 하였다.
  •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고 지방 세력에 대한 견제의 목적으로 9주 5 소경을 설치하였다.
  • 경덕왕 때 왕권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지방과 관청의 명칭을 중국식으로 전환하였다.
  • 골품제의 제약으로 완전한 융합은 실패하였으나, 고구려 귀족은 6두품, 백제 귀족은 5두품의 골품을 부여하였고, 고구려인 · 백제인 · 보덕국인 · 말갈인들을 통일 이후 9 서당에 포함시켜 민족 융합을 시도하였다.

        (1) 중앙 관제

  • 집사부 이하 13부 (총 14부)
  • 13개의 관부가 독립적인 기관이다.
  • 복수 장관제였기 때문에 집사부를 제외한 각 부의 장관은 여러 명인 경우가 많았다.
  • 집사부 장관인 시중(중시)의 지위가 강화되었으며, 무열왕 때 감찰기관인 사정부를 설치하였다.
  • 신문왕 때 공장부(공장 사무) · 예작부(토목, 건축 담당)를 설치하여 14부 체제를 완성하였다.
  • 신문왕때 국립대학인 국학을 설립하였다.

        (2) 지방 관제

  • 지방 감찰을 위해 외사정이 파견되었다. 
  • 9주 5 소경 체제
    • 9주: 넓어진 영토를 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5주(군주)에서 9주로 정비하여 총관(총관(문무왕)→도독(원성왕))을 파견하였다. 점차 행정 기능이 강화되었다. 주 아래 군, 현을 두어 지반관을 파견하였고, 촌은 토착 세력인 촌주가 다스렸다.
    • 5 소경: 지방 통제 강화를 위해서 통일전 2 소경을 5 소경으로 확대시켜 사신을 파견하여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였고, 이 지역은 지방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 특수행정구역:  향 · 부곡 (농사 중심), 삼국시대 피정복민 또는 전쟁포로의 집단거주지였으며, 향리가 지배하였다.
  • 상수리 제도: 지방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이들을 수도에 와서 거주하게 하던 제도로 고려의 기인 제도, 조선의 경주인제도로 계승되었다.

        (3) 군사

  • 중앙군: 9 서당. 군사 핵심은 기병 중심이었으며, 모병제였다. 신라(녹금서당, 자금서당, 비금서당), 고구려(황금서당), 백제(백금서당, 청금서당), 말갈(흑금서당), 보덕 국인(벽금서당, 적금서당)으로 편성되어 부속민에 대한 회유와 견제의 양면적인 성격이 있었다. 신문왕 때 중앙군이 완성되어 국왕 직속의 일원적 조직으로 군제의 핵심이 되었고, 전제왕권을 뒷받침하였다.
  • 지방군: 10정. 9정에 각 1정씩 배치하였다. 북쪽 국경 지대인 한주(한산주)엔 남천정과 골내근정이 함께 배치되었다. 지방군은 국방 외에 경찰 임무도 담당하였다.
  • 군진 설치: 북진(무열왕, 강원도 삼척, 북방민(말갈)대비), 패강진(선덕왕, 황해도, 예성강 이북(한주 이북) 통치), 혈구진(문성왕, 강화도, 지방세력 견제), 청해진(장보고의 난으로 문성왕이 폐지하였음)

 

     5) 발해

  • 왕을 가독부라 불렀으며 높여 부를 때는 황상 또는 대왕이라고 하였는데, 국왕 중심의 집권적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 당나라의 3성 6부제를 근간으로 하는 중앙 관제를 마련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하여 왕권을 전제화하였다. 
  • 최고 회의제 기구로써 정당성의 기능과 감찰기관으로서 중정대가 발전하였다.

        (1) 중앙 관제

  • 3성 6부: 당의 3성 6부제를 수용하였으나 명칭과 운영은 독자성을 유지하였다.
    • 3성: 정책 집행 기구인 정당성을 중심으로 정당성의 장인 대내상이 장관으로서 국정을 총괄하였다. 정당성을 중심으로 정책을 심의하는 선조성과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인 중대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 6부: 정당성은 좌사정((이부), (호부), 의(예부))과우사정((병부), (형부), (공부))으로 나뉘어 이원적으로 운영하였다. 6부의 명칭은 당과 달리 유교식이었다.
  • 그 밖의 기구로

        - 중정대: 감찰 기구

        - 주자감: 최고의 국립대학으로 유교 경전을 교육(문왕)

        - 문적원: 국립 도서관으로써 서적관리를 담당하였다.

        - 전중시: 궁정 사무 관장

        - 사빈시: 외국사절 접대 

        (2) 지방 관제

  • 5경 15부 62주
    • 5경: 전략적 요충지로써 행정의 원활을 위해 5경을 두었다. 수도인 상경(용천부)을 중심으로 중경(현덕부), 서경(압록부), 동원(용원부), 남경(남해부)으로 이루어졌다.
    • 15부: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 도독을 파견하였다. 
    • 62주: 부 아래의 하부 행정 단위로써 주에는 자사를 파견하였다. 주 밑에는 현을 두어 현승을 파견하였다.
  • 촌락: 지방조직의 말단이다. 수령이라 불리는 촌장(토착 세력)을 매개로 지배를 하였으며, 파견되는 지방관은 고구려인으로 임명하였고 촌락의 촌장은 말갈인으로 임명하였다.

        (3) 군사

  • 중앙군: 10위. 각 위에 대장군과 장군을 두어 통솔하였다.
  • 지방 행정 조직에 따라 농병일치의 군사조직인 지방군을 편성하여 지방관이 지휘하였다. (행정과 군사 조직의 일원화)
  • 국경 요충지에는 독립된 부대(특수군)를 두어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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