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1. 신라 말 선종
1) 선종의 발달과 특징
- 신라의 삼국 통일 전후에 전래되어 신라 하대에 확산되었다.
- 실천적인 경향으로 문자를 뛰어넘어(불립문자) 수행을 통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개인적인 정신세계를 찾는(견성 오도) 경향이 강하다.
- 참선과 좌선을 강조(교외별전)하며 마음에서 마음(이심전심)으로 진리를 전하였다.
- 문득 깨달음을 얻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반드시 점직전 수행 단계가 따르며(돈오점수), 선정과 지혜의 양자를 수행(정혜쌍수)하여야 한다.
- 반신라적인 세력으로 성장한 호족의 지지를 받았으며 호족과 결합하여 선종 9 산이 개창되었다.
- 선종 승려는 6두품 지식인들과 함께 새로운 고려사회 건설에 사상적 바탕을 마련하였다.
2) 선종의 영향
- 중국 문화의 하나인 선종은 우리에게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 선종 9산(9산 선문)은 호족의 근거지와 가까운 지방에 자리 잡아 지방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지방 문화의 역량을 증대시켰다.
- 선종이 불교의 형식적인 의식과 권위를 배격함에 따라 조형 미술이 쇠퇴하였고, 승탑(부도)과 탑비가 유행하였다.
-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지방 호족의 이념적 지주가 되었으며, 사회 변혁을 희망하는 4두품 지식인들과 함께 새로운 고려 건국의 사상적 바탕을 마련하였다.
-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하층민도 해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큰 호응을 얻었다.
3) (교종) 5교
- 신라 중대(통일 이후) 교종 계통의 불교가 유행하여 5교의 종파가 성립되었다.
교명 | 창시자 | 사찰 |
열반종 | 보덕 | 경복사, 전주 |
계율종 | 자장 | 통도사, 양산 |
법성종 | 원효 | 분황사, 경주 |
화엄종 | 의상 | 부석사, 영주 |
법상종 (미륵신앙 강조) |
진표 | 금산사, 김제 |
4) (선종) 9산
- 당나라에 유학 갔던 법랑(선덕여왕 때)에 의해 전래되었으나 신라 하대에 이르러 도의가 가지산파를 개창하고 9산 선문이 개창되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종파 | 창시자 | 사찰 |
가지산파 | 도의 | 보림사, 장흥 |
실상산파 | 홍척 | 실상사, 남원 |
동리산파 | 혜철 | 대안사, 곡성 |
사굴산파 | 범일 | 굴산사, 강릉 |
봉림산파 | 현욱 | 봉림사, 창원 |
사자산파 | 도윤 | 흥녕사, 영월 |
성주산파 | 무염 | 성주사, 보령 |
희양산파 | 도헌 | 봉암사, 문경 |
수미산파 | 이염 (왕건스승) |
광조사, 해주 |
2. 도교
1) 도교 사상
- 고구려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백제와 신라도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어 귀족사회를 중심으로 환영받은 사상이다.
- 노장사상(노자 · 장자 사상)에 산천 숭배, 신선사상, 음양오행의 예언 사상이 결합되어 무위자연(허무주의, 금욕), 불로장생과 현세 구복(이익)을 추구(수련도교)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특징이 있다.
2) 고구려의 도교
- 7세기 영류왕(624) 때 친당책으로 당 고조가 고구려에 도사를 파견하여 천존상을 보내고 <도덕경>을 강론하며 도교가 유입되었다.
- 7세기 보장왕 때 연개소문은 불교와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643년 당 태종으로부터 도사 8인과 도덕경을 얻어와 도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등 도교 장려책을 펼치며, 억불양도책을 시행하였다.
- 이를 계기로 보덕은 억불책에 반발하여 백제로 건너가 열반종을 개창하였다.
- 을지문덕의 5 언시(여수장 우중문시)에 도덕경 내용을 반영하였다. (지족원운지)
- 사신도: 도교의 방위신을 그린 것으로 죽은 자의 사후 세계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서대묘의 사신도가 있다.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
3) 백제의 도교
- 산수무늬 벽돌(산수문전): 부여 규암면 외리의 사비시대 절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벽돌면에 산과 냇물이 표현되어있다.
- 금동대향로: 부여 능산리 고분 절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신선들이 사는 이상 세계(봉래산)를 형상화한 것이다.
- 무령왕릉 지석(매지권): 중국 양나라 돈으로 신선(지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 사택지적비: 7세기 의자왕 때 대신 사택지적이 말년에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인생의 허무함(인생무상)을 4·6 변려체의 문장으로 기록하였다.
- 근초고왕 때 태가자 고구려군을 격퇴하고 수곡성까지 진격하고자 하자 장군 막고해가 <도덕경>의 구절을 인용(태자와 함께 만족할 줄 알면 ~)하여 만류하였다.
4) 신라의 도교
- 화랑도: 화랑도를 국선도, 풍월도, 풍류도라 지칭하였는데 이는 무위자연과 신선사상을 반영한 도교의 수용을 알 수 있다.
- 임전무퇴(세속 5계 중), 신선 설화 등으로 도교적 사상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5) 통일신라의 도교
- 최치원의 4 산비명: 불교·도교·유교·풍수지리 사상이 모두 반영되어있다.
- 김유신이나 그의 증손인 김암 등이 도교적 방술에 능통했고 김유신의 묘 주위 둘레돌에 십이지신상이 최초로 출토되었다.
6) 발해의 도교
- 문왕의 딸 정효공주 묘지의 4·6 변려체 문장에 불로장생 사상이 반영되어있다.
- 발해 도교의 대가 이광현은 도교 경전인 <도장>이 수록된 저서들을 저술하며 수련도교를 발전시켰다.
7) 고려의 도교
- 초제: 도교 제사
- 복원궁: 예종 때 세운 도교 사원
- 팔관회: 불교·도교·민간 신앙이 결합한 종교행사로 10월엔 서경에서 11월엔 개경에서 시행되었다. 성종 때 폐지되었다가 현종 때 부활하였다.
- 도교 교단은 정비되지 않았다. (고구려는 교단 정비되었음)
8) 조선의 도교
- 소격서: 도교 행사를 주관하는 관서
-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초제: 일월 신성에게 제사를 지냄
3. 풍수지리설
- 신라 하대에 도선과 같은 선종 승려들이 당에서 유행한 풍수지리설을 들여왔다.
- 산세와 수세를 살펴 도읍, 주택, 묘지 등을 선정하는 인문지리적 학설에 지리를 보고 길흉을 알아보는 예언적 도참 신앙과 결부되었다.
- 경주 중심의 자리 개념에서 벗어나 호족 지방 근거지를 명당화하고 지방 중심으로 국토를 재편성하려는 주장으로 발전하였으며 신라 정부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는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반응형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 후삼국의 성립 (0) | 2023.09.11 |
---|---|
[한국사] 고대문화 - 3. 교육 및 과학기술 (1) | 2023.09.11 |
[한국사] 고대문화 - 1. 사상 (0) | 2023.09.11 |
[한국사] 고대 경제 (1) | 2023.09.11 |
[한국사] 고대 사회 (1) | 2023.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