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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 역사서
1) 한자의 사용
- 창원 다호리 유적지에서 붓이 출토된 것으로 철기 시대부터 한자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 처음에는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다가 이후 이두와 향찰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2) 교육
(1) 삼국의 교육
고구려 | 백제 | 신라 |
· 수도: 태학(4세기, 소수림왕), 귀족 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국립기관, 유교 경전과 역사서를 교육하였다. · 지방: 경당(5세기 평양 천도 이후(장수왕 때로 추정) 설치), 평민 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사립기관, 한학과 무술을 교육하였다. |
· 5경 박사, 역박사, 의박사가 유교 경전과 기술학 등을 교육하였다. |
· 화랑도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경학과 무술 교육을 실시하였다. |
한학의 발달을 알 수 있는 유물 |
광개토대왕릉비, 중원고구려비, 을지문덕의 오언시 등 | 개로왕의 북위에 보내는 국서 사택지적비문, 무력왕릉 지석 등 |
진흥왕 순수비, 울진 봉평비(법흥왕), 임신서기석 등 |
(2) 남북국의 교육
통일신라 | 발해 |
· 신문왕 때 국학 설립 → 경덕왕 때 태학감으로 개칭 → 혜공왕 때 국학 · 원성왕 때 독서삼품과: 유교경전의 이해 수준을 시험하여 관리를 채용하는 제도다. 골품제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으나, 학문과 유학 보급에 이바지하였다. |
· 문왕 때 주자감에서 귀족 자제들에게 유교 경전을 교육하였다. · 도당 유학생을 파견하여 빈공과 급제생을 배출하였다. · 정혜, 정효 공주 묘지 비문을 통해 한학의 발달을 알 수 있다. · 압자와: 발해의 독자적인 문자. (공식 기록 및 외교문서는 한자 사용) |
3) 역사서
- 삼국의 역사서는 모두 현존하지 않는다.
- 국력이 크게 번성하던 시기에 중앙 집권 체제 정비 및 왕권 강화 목적을 위해 국가사업으로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 고구려: 국가 초에 저자 미상인 <유기> 100권 편찬 이후 영양왕(600) 때 이문진이 편찬한 <신집> 5권이 있다.
- 백제: 근초고왕(375) 때 고흥이 쓴 <서기>가 있다.
- 신라: 진흥왕(545) 때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하였다.
2. 통일신라의 유학
1) 신라 중대의 유학
(1) 김대문
성덕왕 때의 대표적인 문장가로 진골 귀족의 입장에서 신라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인식하며 <고승전>: 유명한 승려의 전기를 다룸, <악본>: 음악에 관한 저술, <한산기>: 한산주에 대한 지리지, <계림잡전>: 신라 역사를 야사로 기록하였음, <화랑세기>: 화랑의 전기를 다룸, 등을 저술하였다.
(2) 강수
- 6두품으로서 두상이 특이하다하여 우두라고도 불렸으며, 외교문서를 잘 적어 무열왕과 문무왕의 통일 사업을 보조하였다.
- 불교를 세외교라 비판하며 유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일부다처제와 골품제를 비판하며 <청방인문표>: 당에 간 무열왕의 아들 김인문을 풀어달라고 청하는 글, <답설인귀서>: 문무왕 때,를 저술하였다.
(3) 설총
- 원효의 아들이자 6두품이었으며, 신문왕에게 <화왕계>를 받쳤다.
- 유교 경전에 조예가 깊었으며, 이두를 정리하여 한문 교육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 성덕왕(719) 때 '감산사아미타여래조상기'를 저술하였다.
- 고려 현종 때 홍유후로 추증되었다.
2) 신라 하대의 유학
(1) 최치원
가을바람에 괴롭게 읊조리나니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 호: 고운, 해운
- 6두품으로 당에서 유학을 하며 빈공과에 급제를 하였으며, 당에서 '토황소격문'(격황소서)을 지어 명성을 떨쳤다.
- 아찬의 벼슬에 올라 진성여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으나 진골귀족들의 반대로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고려 현종 때 문창후로 추증되었다.
- 저서 및 저술 활동: 현존 최고의 문집인 <계원필경>, <제왕연대력>, <사륙집>, <중산복궤집>, 합천 해인사 길상탑 탑지 작성, 난랑비 서문(삼교 회통 사상, 풍류라고도 한다.), 4 산비명(유·불·도 삼교를 회통한 사상가로 추앙받았다.)
※4 산 비명
희양산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명, 쌍계사진감선사대공령탑비명,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 초월산대숭복사비명
- 화엄종에 대한 저술: <법장화상전>, <부석존자전>, <석순응전>, <석이정전>
- 최치원은 발해에 대해 양면적인 입장이었는데,
- <사불허북국거상표>, <상태사시중장>에서 발해에 대한 적개심을 표현하면서도
- <상태사시중장>에서 마한은 고구려, 변한은 백제, 진한은 신라로 발전하였고,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건국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 이 중 <계원필경>, <법장화상전>, <사산비명>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3. 과학 기술
1) 천문학
- 농경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었으며 왕의 권위를 하늘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삼국사기>에 일·월식, 혜성 출현 등에 관한 관측 기록이 수록되어있다.
- 고구려: 고분 벽화에 별자리 그림과 조선의 '천상열차분야 지도'(태종)에 영향을 준 천문도가 있다.
- 백제: 관직 중 역박사가 존재하였으며, 천문을 관장하는 일관부가 있었다.
- 신라: 동양 최고(古)의 천문대인 첨성대(선덕여왕 때)를 건립하였다.
- 통일신라: 성덕왕 때 누각전(물시계에 관한 업무를 담당)을 설치하였으며, 김유신의 후손 김암은 병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2) 수학
- 천문학의 발달과 함께 높은 수준의 수학도 발전하였는데, 축조된 조형물과 건축에도 정밀한 수학적 지식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고구려 고분의 석실이나 천장의 구조
-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
-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
- 통일신라의 석굴암 석굴 구조(네모 형태의 전실은 땅을 상징하는 것이며, 원형의 주실은 하늘을 상징한다.),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다보탑 등이 있다.
3) 목판 인쇄술 · 제지술
- 불교문화의 발달에 따라 대량으로 불경을 인쇄하기 위해 목판 인쇄술과 제지술이 발달하였다.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불경으로 현존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이다.
- 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닥나무로 제작된 종이에 불경이 쓰여있다.
- 닥나무의 우수한 품질로 가장 오래된 것이면서도 내용도 완전한 매우 훌륭한 역사적 가치다.
4) 금속기술
- 고구려: 일찍부터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하였으며, 고분벽화에 철을 단련하고 수레바퀴를 제작하는 기술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 백제: 강철로 제작하고 금으로 글씨를 상감해 새겨 놓은 칠지도(4세기 후반 왜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금동대향로는 백제의 제철 기술 및 금속 공예의 우수함을 보여준다.
- 신라: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으로 신라의 금세공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통일신라: 12만 근의 구리와 아연이 함유된 청동으로 만든 성덕대왕신종(봉덕사종, 에밀레종)과 상원사 동종은 신라의 금속 주조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 준다.
※ 신라 3 최 (6두품 빈공과 합격자)
최치원
최언위(왕건)
최승우(견훤)
4. 건축과 탑
1) 고구려
- 안학궁: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 천문오행사상의 영향을 받아 건립하였다. 궁궐 건축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궁궐 터 사각형 한 면의 길이가 620m였다.
- 평양성(장안성, 평양): 평지성(안학궁)과 산성(배후 산성으로 대성산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주민의 주거지를 둘러싼 나성을 축조하였다. 산성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산의 자연 능선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쌓는 것이 특징이다.
2) 백제
- 부여 왕흥사: 무왕 때 건립한 사찰
- 익산 미륵사: 무왕 때 건립한 사찰로 9층의 쌍탑을 가지고 있다. 동쪽에 동원 석탑과 서쪽에 서원 석탑을 두고 중앙에 목탑을 두어 일직선상에 탑 3개를 배열, 각 탑에 금당을 1개씩 세운 일탑일금당식의 가람배치 방식으로 되어있다.
- 부여 궁남지: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청 되는데 사비 시대의 별궁의 인공 연못으로 우리나라 최고(古) 궁원지이다.
3) 신라
- 황룡사: 6세기 진흥왕 때 건립한 절로 일당일탑의 가람배치 양식이다. 7세기 선덕여왕 때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호국사찰이었으나 고려 때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 분황사: 7세기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절로 분황사 모전 석탑(석재를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탑)이 있다. 분황사에는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4) 통일신라
불국사
- 경덕왕 때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때 완성된 절이다.
- 정문 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직선과 곡선을 조화시켜 만들었다.
- 불국토의 이상을 조화롭고 균형감 있게 표현한 사원이다.
석굴암
- 경덕왕 때 김대성이 창건 시작하여 혜공왕 때 완성되었다.
- 인공으로 축조한 석굴 사원으로 네모난 전실과 둥근 돔 형태의 주실을 갖추었다.
불국사는 현세의 부모를 위해 지었으며, 석굴암은 전세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 모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안압지(월지)
- 문무왕 때 완성된 왕실과 귀족들을 위한 연회 장소로 조성된 인공 연못이다.
- 백제의 정원 형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안압지에서 14면체 주사위(주렴구, 귀족 놀이 문화)와 목간(궁정 음식이 적혀있음)이 발견되었다.
임해전, 포석정, 도교의 삼신산(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상징하는 인공섬을 조성하는 등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여준다.
5) 발해
- 궁궐터: 상경은 당나라 수도 장안을 모방하여 만들었으며, 주작대로라는 직선으로 뻗은 큰길을 내고 그 안에 궁궐과 사원을 세웠다. 상경의 궁궐 내에 온돌 장치도 발견이 됐는데, 이것은 고구려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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