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문화 초기 지배층에게는 시조 신앙이 민간에는 샤머니즘과 점술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구려: 동명성왕, 하백신, 부여신 숭배백제: 동명신, 구태신 숭배신라: 박혁거세 시조묘 건립민간: 천신, 산신, 해신, 일월신 등 자연신 숭배 및 자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삼국이 중앙 집권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초부족적 사상을 통일해야 했고 그 방법으로 불교를 수용하여 지배질서를 강화하고자 하였다.왕실에서 불교 수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기에 삼국의 불교는 왕실 · 귀족 중심의 불교였다.왕실 불교로 호국적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내세적 성격보다 현세에 구복을 구하는 현세구복적인 성격을 띤다.불교는 새로운 국가 정신 확립에 기여(왕권 강화)하였고 선진 문화를 수용하면서 새로운 문화 창조에 중요한 ..
1. 삼국의 경제 1) 수취 제도군공을 세운 사람에게 일정 지역의 토지와 농민을 식읍으로 분배했다.전쟁으로 정복한 지역에는 그 지역의 지배자를 내세워 토산물을 공물로 수취하였다.전쟁 포로를 귀족이나 병사에게 노비로 분배했다.토지 생산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토지보다 노동력을 중시하여 인두세(인정의 다과에 따라 부과) 중심이었다.조세는 재산의 정도에 따라 호를 3등급으로 나누어 곡물과 포를 차등으로 징수하였으며, 백제는 풍흉을 고려하여 이전보다는 합리적인 수취 제도를 보여준다.지역의 특산물(현물)도 수취하였으며,왕궁, 성, 저수지 등을 축조할 때 노동력이 필요하면 국가에서 15세 이상의 남자를 동원하였다.고구려의 진대법(고국천왕, 을파소의 건의)은 매년 3~7월에 관가의 곡식을 가구수에 따라 차등을 두..
1. 삼국 사회 1) 신분 제도 (1) 삼국 시대 이전(부여, 초기 고구려, 삼한)부족의 통합 과정에서 지배층 사이의 위계서열이 마련되고, 이것이 신분제도로 발전해갔다.가 · 대가부족장 세력으로 호민을 통해 읍락을 지배하고 자신의 관리와 군사력을 지니고 정치에 참가했다.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귀족으로 편제되었다.호민경제적으로 부유한 계층으로 고구려 호민은 좌식자로 전사 집단이기도 했다.하호농업에 종사하는 평민으로 부여의 하호는 전쟁 시 식량을 공급하기도 하였다.노비읍락의 최하층에 존재한 집단으로 주인에게 예속되어 생활하는 천민층이다. (2) 삼국 시대신분적 차별은 법적으로 더욱 강한 구속력을 형성하였고 지배층은 율령을 제정하여 특권을 유지하였다.개인의 능력보다 신분이 중요시..
1. 신라 말기의 사회 변동 진골 귀족들은 골품제에 집착하면서 족당을 형성하여 왕위쟁탈전을 시작하면서 왕권은 약화되고, 상대등의 세력이 강화되면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지배층의 녹읍 부활, 사원의 면세전 증가, 귀족들의 토지 사유화, 과도한 수취 제도로 토지를 읽고 노비가 되거나 초적이 되는 농민들이 발생하였다.조세의 독촉으로 몰락한 농민들이 반란 일으키게 되었고, 상주(사벌주)에서 발생한 원종과 애노의 난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농민항쟁이 확산되었다. 중앙(8세기 말)지방(9세기 초 · 중기)전국(9세기 말)◎ 진골 귀족들의 왕위 쟁탈전 시작◎ 혜공왕 - 대공·대렴의 난(768) - 96각간의 난(768) - 김지정의 난(780) ◎ 지방으로 왕위 다툼이 확산 됨◎ 헌덕왕 - 김헌창의 난(822) - 김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