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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이번 고려 왕조 4는 고려 왕조의 마지막, 원 간섭기와 고려 말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수험 시절에 공부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어려웠던 부분을 그때의 나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정리하고 있으니 저와 같이 한국사가 멀게만 느끼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저의 블로그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원 간섭기
· 원 나라(1271): 몽골은 국호를 원으로 고치고 고려를 일본 정벌에 동원 하거나 내정간섭을 단행하였다.
· 쌍성총관부(1258, 철령이북): 화주(영흥)에 고종 때 조휘, 탁청의 배신에 의해 설치되어 철령 이북 땅을 관할하게 하였다. 공민왕(1356) 때 유인우가 무력으로 탈환하였다. 이후 명의 철령위 설치를 둘러싼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 동녕부(1270, 서경): 원종 때 최탄의 배신으로 서경에 설치되어 자비령 이북 땅이 포함되었다. 충렬왕 때(1290) 고려의 간청으로 반환되었다.
· 탐라총관부(1273, 제주도): 원종 때(1273, 삼별초 항쟁 진압 후) 제주도에 설치되었으며, 원나라는 일본 정벌 준비를 위해 목마장을 설치하였다. 충렬왕(1301) 때 고려에 반환되었다.
※ 영토 상실 및 반환 순서
쌍성총관부(상실1) → 동녕부(상실2 및 탈환1) → 탐라총관부(상실3 및 탈환2) → 쌍성총관부(탈환3)
· 일본원정: 1차(1274, 충렬왕, 고려에 12개의 둔전경략사(식량조달기구)를 두고 병선 900척을 동원해 김방경과 홀돈이 큐슈의 하카타에 도착하였으나 태풍으로 실패하였다.) → 정동행성 설치(1980, 개경, 일본 원정을 위한 기구로 기구의 장인 승상은 고려 국왕이었다. 일본 원정 실패 후에도 유지되어 내정 간섭기구로 삼았다.) → 2차(1281, 충렬왕, 고려·원 연합+남송의 군대(강남군) 합류, 태풍으로 실패하였다.)
· 호칭 격하: 짐→고, 폐하→전하, 태자→세자/ 조·종→왕(원에 충성의 의미로 '충' 자를 앞에 넣음)
· 관제 격하: 고려 전기의 2성 6부 관제가 1부(첨의부) 4사(전리사, 군부사, 판도사, 전법사/ 공부사:폐지)로 격하되었다.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으며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개칭하였다.
식목도감은 고려 후기 기능이 축소되었고 조선시대 의정부에 흡수되었다.
· 독로화: 고려의 세자가 원 나라의 수도인 대도(북경)에 인질인 독로화로 갔다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 심양왕: 만주일대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통제하는 동경총관을 심양왕으로 개칭하여 왕족을 심양왕에 즉위시켜 고려왕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왕족간의 갈등을 유발하였다. (이이제이, 以夷制夷)
· 입성책동: 고려 부원배들이 원이 고려에 행성(충선왕, 충숙왕, 충혜왕 때 제기)을 세우도록 한 획책이었다.
· 이 밖에도 원의 부마국, 만호부(원의 영향으로 설치된 군사조직), 결혼도감(공녀차출), 다루가치(감찰관), 순마소(치안, 반원 인사들 색출), 응방(매(해동청) 징발), 철릭복장, 겁령구: 원 공주를 따라온 시녀, 반전도감(특산물 징발) 등의 영향이 있었다.
1) 충렬왕
· 제국대장 공주와 결혼하여 충선왕을 낳았다.
· 전민변정도감 설치(원종, 공민왕, 우왕 때도 설치)
· 둔전경락사 폐지
· 원나라와 2차례 일본 원정에 동원되었다.
· 홍자번의 편민 18사 건의로 개혁 시도
· 필도치 설치 vs 도평의사사
· 문묘(공자 사당, 공자 초상화: 성덕왕 때의 공자 초상화를 업그레이드 하였음)
· 안향의 성리학 전래
· 안향의 건의로 장학 재단인 섬학전 설치
· 경사교수도감 설치: 7품 이하의 관리들에게 경정과 역사를 교육하는 곳
· 묘련사
2) 충선왕
· 정방을 폐지하고 한림원을 사림원(with 홍자번)으로 고쳐 개혁의 중심 기구로 개혁을 단행하였다. (정방은 이후에도 존폐를 거듭하였다.)
· 각염법을 제정하여 권문세족과 사원의 소금 독점 방지 목적을 위해 의염창을 설치하여 소금과 철을 전매하였다. (소금전매제)
· 즉위 교서에 왕실과 혼인 가능한 15개 가문인 재상지종을 정하여 발표하였다.
※ 재상지종(권문세족)
철원 최씨, 해주 최씨, 청주 이씨, 공암 허씨, 평강 채씨, 평양 조씨, 횡천 조씨, 파평 윤씨, 황려 민씨, 당성 홍씨 등
· 계국대장공주의 무고(*조비무고사건)로 즉위 7개월 만에 원으로 소환되었고 왕위를 충렬왕에게 넘겨주면서 충선왕의 개혁정치는 실패하였다.
· 원나라에 머물면서 무종을 원나라 황제로 옹립하는 데 기여하며 심양왕에 봉해졌다.
· 충렬왕이 죽자 1308년에 복위하였으나 충숙왕에게 왕위를 넘기고 원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감한다.
· 충숙왕에게 양위 후 원나라 북경(연경)으로 가서 만권당이라는 독서당을 설치하여 고려의 이제현, 원의 조맹부, 요수, 염복 등 상호 교류하게 하였고 원나라 학자를 초빙하여 학문 연구 및 문화 교류에 힘썼으며, 송설체가 고려에 유입되었다.
· 수시력 사용
3) 충숙왕
· 제폐사목소를 설치한 후 찰리변위도감으로 개칭하였다. (*토지(농장)와 노비에 대한 변정을 하려하였으나 실패함)
· 사심관 제도를 폐지(1318)하였다.
· 원에 갈때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반전도감을 설치하였다.
· 평양에 기자 사당(숭인전)을 건립하였다.
· 두 차례 걸쳐 왕위에 즉위하였는데 이는 심양왕을 통한 원의 이간 정책이 원인이 된 것이다.
· 민지 <본조편년강목>
4) 충혜왕
· 편민조례추변도감을 설치하였고, 기존의 은병을 대신하여 소은병을 발행하였다.
· 원이 유수 보수와 전이문낭중 장백상 등 상왕에게 복위 ~ 왕은 드디어 원으로 갔다.
5) 충목왕
· 정치도감을 설치하여 녹과전을 부활하고 각 도에서 양전사업을 실시하였으나 권문세족의 반대와 원의 간섭으로 실패하였다.
· 원의 영향을 받은 경천사지 10층 석탑(대리석)을 건립하였다.
· 응방 혁파, 정방 폐지 시도
6) 충정왕
· 보수세력이 득세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하였다.
· 재위 3년만에 사망하였다.
3. 고려 말기(14세기 중국의 원·명 교체기를 이용)
1) 공민왕
· 노국대장공주와 결혼, 반원, 자주, 왕권 강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전기 정책 | 후기 정책 |
· 몽고풍 금지, 정방 폐지(1352): 몽골풍의 의복, 변발 등을 폐지하였으며, 목은 이색이 주도하여 정방을 폐지하였다. · 첨설직 설치(1354): 홍건적, 왜구를 격퇴한 군공 포상을 위한 명예직 · 원의 연호 사용 폐지, 고려 전기 문종 때의 관제로 복구하였다(1356). · 내정간섭 기구인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1356). · 기철 등 부원세력 숙청 및 친원파 숙청(1356) · 유인우, 이자춘(이성계의 부)로 하여금 쌍성총관부를 무력으로 수복하여 철령이북의 지역을 수복하였다(1356). · 성균관을 통해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고 신진사대부를 대거 등용 |
· 홍건적 1차 침입(1359, 모거경 등 홍건적 4만 침입, 서경함락) · 홍건적 2차 침입(1361, 사유 등 10만 침입, 개경 함락)→원나라 나하추의 침입 및 공민왕의 복주(안동) 피신(안동 놋다리 밟기 놀이의 유래)→ 흥왕사의 변(1363, 친원파 김용의 공민왕 시해 시도→ 최영과 이성계 등이 진압 함.) · 내재추제 신설: 도평의사사의 권한을 축소시켜 재신과 추신의 일부가 궁내에서 기밀사무 및 주요 정무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 신돈 등용(1364) · 노국대장공주 사망(1365)→전민변정도감 설치(1366, 판사: 신돈, 권문세족의 토지와 노비 몰수) · 과거제 정비, 성균관 정비(1367, 이색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임명) · 명 건국(1368) 및 공민왕의 친명정책 · 요동 정벌(1369): 이성계와 지용수의 요양(동녕부: 충렬왕 이후 서경에서 요양으로 이동)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 자제위 설치(1372): 국왕의 신변에 대한 호위 겸 지도자 양성 목적 |
· 공민왕의 개혁 실패: 원의 간섭, 권문세족의 반발, 신돈 피살, 신진사대부 세력의 미약, 공민왕 시해(1374)
2) 우왕(왜구의 침입)
· 이인임 등의 권문세족에 의한 친원 정책
· 홍산 대첩(1376): 최영이 홍산(부여)에서 왜구를 토벌하였다. (호기가, 최영)
· 화통도감 설치(1377): 최무선의 건의로 화포 등을 만드는 기구 설치
· 정몽주를 일본으로 파견(1377)하여 왜구의 단속을 요청하며 수백 명의 포로를 귀환하도록 함
· <불조직지심체요절>(1377, 청주 흥덕사, 현존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하권 소장 중)
· 진포 대첩(1380): 최무선이 진포(금강 하구)에서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왜선 500척을 대파하였다.
· 황산 대첩(1380): 이성계가 황산(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조선시대 선조 때 황산대첩비가 건립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훼손되었다.)
· 관음포 대첩(1383): 정지가 관음포(남해)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 이인임 축출 및 최영의 정권 장악(1388)
·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1388)→이성계의 요동 정벌 출병(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반대 vs. 요동 정벌 추진: 최영, 우왕+조민수)→이성계의 위화도 회군(1388, 이성계 with 조민수)→최영 제거, 우왕 폐위 및 창왕 옹립→조민수 제거
3) 창왕
· 쓰시마 정벌(1389): 박위의 쓰시마(대마도) 정벌 (※이종무: 세종(1419) 때 쓰시마 정벌)
· 상서사 설치 및 정방의 완전한 폐지
· 폐가입진으로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였다.
4) 공양왕
· 과전법(1391): 정도전, 조준 등의 급진 개혁파 신진사대부 세력이 단행했던 급전도감을 통한 토지 개혁으로 신진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 강경파(정도전, 조준 등이 전면적 토지개혁과 왕조 교체 주장)가 온건파(이색, 정몽주 등이 점진적인 개혁 주장)를 제거하고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여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면서 조선왕조를 개창(1393)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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